
혼자 살려면 사흘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적어도 다섯 명은 되어야 한다, 는 글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. 잊히지 않는 구절이다. 당연히 혼자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첫번째로 꼽히고 있었다. 그 뒤로 열다섯 가지쯤 되는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는데, 혼자 밥 먹는 걸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, 무언가의 마니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희미하게 떠오른다. 그 희미한 기억에 비하면 사흘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안부를 챙길 사람이 다섯 명은 있어야 된다는 구절은 십계명처럼 명백하게 떠오른다. 그런 사람을 다섯 명은커녕 한 명도 두고 있지 못하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.
-신경숙, 화분이 있는 마당 中
신경숙 작가의 단편집 '모르는 여인들' 중에서 <화분이 있는 마당>을 좋아합니다.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작가지만.. 이 책은 두고두고 읽었고, 읽을 것 같습니다. 소설은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주인공이 실어증과 식이장애를 겪게 되고, 또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.
작중에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주인공이 음식을 삼키며 ‘맛의 감각’과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. 이 장면에서 화자가 ‘맛’을 감각하는 모습이 무척 생생하게 그려집니다. 무척 생생하다-라고밖에 표현 못하는 게 싫지만.. 무튼 텍스트를 따라 읽다보면 혀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손끝과 발끝으로 짜릿한 감각이 전해지는데요. 저는 미뢰와 팔다리의 솜털이 날을 바짝 세우게 만드는 그 -생생한-짜릿함을 좋아합니다. 그래서 모든 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나 조금 울적할 때면 이 책을 열고요, 주인공의 회복을 통해 내 감각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의 '생생함'을 확인합니다. 내 안의 무언가가 망가지거나 정지된 것 같을 때 이런 '느낌'의 회복이 중요한 것 같아요.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?
그럼 위의 문단은 무엇이냐. 이 소설의 첫 문단입니다. 늘 그냥 넘어가던 도입부였는데. 오늘따라 저 말이 깊숙이 다가오더라고요.
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 때 금방 나를 찾아줄 사람이 없다는 건 불안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. 혼자 살면서 이런 감각에는 꽤 익숙해진 것 같다가도 덜컥 심장을 내리누르는 불안감이 들 때면 아직도 무섭고, 울음이 납니다.
사실 글쓰는 지금이 그래요. 그래서 쓰는 글 입죠. 저는 혼자 살 준비가 안된 채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. 여러분은 어떤가요.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