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드문 악기
이선영
글라스 하프 또는 글라스 하모니카
이른바 뮤지컬 글라스는 1929년 브루노 호프만이 고안한 악기로
와인글라스와 비슷한 모양의 유리잔 가장자리를
물에 적신 손가락으로 문질러 연주한다고 한다
글라스 하모니카는 한 세기 가까이 전 유럽을 휩쓴 인기 악기였고
도니제띠나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에 쓰이기도 했으며
‘글라스 하모니카와 관현악을 위한 대 쏠로’ ‘글라스 하모니카를 위한 환상곡 E단조’ 등의 제목이 붙은 연주곡들이 있었다
하지만 정식 악기로 인정받은 것은 아님을 언급하면서
정식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고
이 일화를 소개하는 음악 프로 진행자는 덧붙인다
대부분의 사람들이 글라스를 악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
어엿한 음색을 가지고도 악기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
글라스가 정식 악기가 될 수 없는 것은
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일 외에 유리잔으로서의 다른 효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
피아노니 첼로니 비올라니 하는 정식 악기는
악기로서 외엔 다른 쓰임새가 없기에 오로지 제 본분을 다하며
악기로서의 명망을 누리는 것일게다
그러니 글라스가 정식 악기가 될 수 없는 것을
슬퍼할 일만은 아니리라
글라스에는 그가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주어진 것일 뿐이니까
글라스는 세상의 향취를 음미하려는 누군가의 손과 입술 사이를 이어주는 유리잔이었다가
룰루랄라 악기가 되는 순간엔 온몸을 바쳐
타고난 저만의 소리를 내는 데 열중하면 되리라
세상엔 글라스 하프라는 드문 악기를 발견해내고
그 소리를 혼자만의 내밀한 음악으로 삼으려는
음지의 나지막한 콧노래꾼들이 있는 것이다